오스틴 딘을 만난 날, 전력분석팀을 생각했다
지난 주말 롯데타워에서 LG 트윈스 오스틴 딘 선수를 만났다
최근 폭염으로 경기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주말인데도 가족과 함께 롯데월드몰에 나와 있었던 것 같다. 인파 속에서 내가 먼저 알아봤고, 쉬는 날 가족이랑 있는 사람을 붙잡는 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팬심을 못 이기고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렸다. 흔쾌히 응해줬다. 팬 서비스가 정말 좋았고, 매너도 그랬다.
올해 오스틴의 성적은 이렇다. 8월 초 기준 타율 0.334, 31홈런, 94타점, 출루율 0.422, OPS 1.067. 홈런 부문 선두이고 이 페이스면 시즌 45홈런까지 간다. 조정득점생산력은 리그 1위, 6월 월간 MVP도 김도영을 제치고 오스틴이 받았다.
MVP 페이스다. 김도영도 워낙 잘하고 있어서 아직 승부가 갈리지는 않았지만, 지금 흐름이면 충분히 간다.
그리고 여기 걸려 있는 기록이 좀 특이하다. LG는 1982년 MBC 청룡 시절부터 44년 동안 정규시즌 MVP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홈런왕도 없다.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 홈런왕에 오른 선수는 전부 두산 소속이었고 2018년 김재환이 마지막이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얹힌다. 잠실구장은 올 시즌을 끝으로 헐리고 그 자리에 돔구장이 들어선다. 오스틴이 홈런왕을 차지하면 LG 구단 역사상 처음이면서 동시에 잠실구장의 마지막 홈런왕이 된다. MVP까지 받으면 44년 만에 나오는 LG의 첫 정규시즌 MVP다.
오스틴이 온 뒤로 LG는 두 번 우승했다. 2023년과 2025년. 1루수 골든글러브도 두 번 받았고 올해는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통산 100홈런을 넘겼다. LG 역대 외국인 타자 중에 이만한 선수가 있었나 싶다. 주장 완장을 차는 그림도, 언젠가 등번호를 걸어두는 그림도 상상이 된다. KBO에서 외국인 선수 영구결번은 아직 한 번도 없었지만 오스틴이라면 진지하게 이야기가 나올 만하지 않나. 팬들이 이 선수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더 그렇다.
사진 찍자고 다가갈 때는 그냥 좋아하는 선수여서였다. 그런데 숫자를 하나씩 늘어놓고 보니 그 31홈런에 44년이 걸려 있었다.
야구는 선수를 숫자로 기억하게 만든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야구에는 한 선수를 설명하는 숫자가 유난히 많다. 예전에는 타율·홈런·타점처럼 눈에 잘 띄는 기록이 평가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타석에서 어떤 공을 골랐는지, 그 선택이 팀 승리에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까지 들여다본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겉보기에는 감각과 운의 스포츠 같은데, 뜯어보면 안타 하나, 볼넷 하나, 수비 위치, 투구의 회전과 속도까지 전부 기록으로 남는다.
빌리 빈이 실제로 한 일
이런 변화를 이야기하면 빌리 빈이라는 이름이 꼭 나온다. 세이버메트릭스를 만든 사람은 아니다. 그 개념은 빌 제임스 같은 분석가들이 오래전부터 다듬어왔고 빌리 빈은 그걸 실제 구단 운영에 밀어붙인 단장이었다.
영화 〈머니볼〉로 알려진 그의 방식은 흔히 "저평가된 선수를 찾아냈다"로 요약되는데,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당시 야구 시장은 출루율의 가치를 제대로 매기지 않고 있었다. 타율 3할 타자에게는 큰돈이 붙었지만 볼넷을 골라 꾸준히 나가는 타자는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득점과의 상관관계는 출루율 쪽이 더 높았다.
즉 빌리 빈이 발견한 건 새로운 숫자가 아니라 가격과 가치 사이의 틈이었다. 데이터는 이미 다 있었다. 다들 그걸 안 보고 있었을 뿐이다.
같은 경기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달라졌다
빌리 빈 시절과 지금이 또 다르다. 그때는 기록지에 이미 적혀 있던 숫자를 다시 읽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경기 한 판에서 뽑아내는 데이터의 양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
공 하나마다 구속과 회전수, 회전축, 릴리스 포인트가 따라붙는다. 타구는 발사각과 속도로 기록된다. 야수가 어디 서 있었고 몇 초 만에 움직였는지도 남는다. 예전 기록지는 안타 하나를 '안타'라고만 적었다. 지금은 그 안타가 어떤 공을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때린 결과인지까지 되짚는다.
늘어난 건 양만이 아니다. 쓰는 방식이 훨씬 다양해졌다.
2024년부터 KBO는 ABS를 쓴다. 볼과 스트라이크를 트래킹 시스템이 판정한다. 스트라이크존의 상하단 기준은 2023년 타자 평균 신장 데이터로 만들었다. 중계 화면에 뜨는 구속·구질 그래픽도 트랙맨에서 나온 값이다. 심판의 눈과 해설자의 감으로 채우던 자리에 측정값이 들어온 것이다.
수비 시프트 이야기는 더 재미있다. 타구 방향 데이터가 쌓이면서 야수를 한쪽으로 몰아 세우는 수비가 너무 잘 먹혔다. 그러자 리그가 규칙을 손봤다. KBO는 2024년부터 내야수 배치를 제한했고, 2026년에는 위반 시 제재까지 강화했다. 데이터 분석이 경기 내용을 바꾸다 못해 규칙을 바꾼 셈이다.
작전도 마찬가지다. 번트를 댈지, 대타를 언제 쓸지, 불펜을 몇 번 타자부터 붙일지가 이제 기대득점 표 위에서 결정된다. 그만큼 야구가 단조로워졌냐 하면 그렇지 않다. 벤치가 볼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경기는 오히려 더 촘촘해졌다.
그 판단 앞에 있는 일
여기까지는 흔히 하는 이야기다. 그다음이 잘 언급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열한 판단들은 전부 데이터가 맞다는 걸 전제로 한다.
ABS의 스트라이크존은 타자 신장 데이터가 정확해야 성립한다. 시프트 차트는 트래킹 장비가 야수 위치를 제대로 기록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 어느 한 경기 기록이 다른 시스템과 선수 정보가 어긋난 채로 들어가 있으면, 그 선수의 시즌 성적부터 틀어진다.
그래서 구단에는 전력분석팀이 있다. 감독이 벤치에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누군가는 그 결정의 근거가 될 자료를 모으고 맞춰보고 정리해둔다. 중계 화면에 안 나오고 박수도 안 받지만 그 작업이 빠지면 벤치의 판단은 다시 감으로 돌아간다.
내가 일하는 페블러스가 회사 데이터를 두고 하는 일이 그 역할에 가깝다. 벤치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 자료를 맞춰두는 자리다. AI 시대에는 모델을 무엇으로 고르느냐만큼이나 그 모델이 무엇을 먹고 자랐느냐가 결과를 가른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
빌리 빈이 한 일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는 없던 데이터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출루율은 그때도 기록지에 멀쩡히 적혀 있었다. 다들 그 칸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다.
회사가 가진 데이터도 비슷한 데가 있다. 없어서 못 쓰는 경우보다, 십몇 년치가 어딘가에 쌓여 있는데 어떤 상태인지 아무도 열어본 적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다 AI를 붙여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제야 창고 문을 연다.
좋은 선수는 기록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러 기록과 상황, 시간의 흐름이 함께 쌓여야 그 선수의 값이 보인다. 오스틴의 31홈런도 44년이라는 시간이 얹히니까 다르게 읽혔다.
데이터도 그렇지 않을까. 쌓여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아무 값이 아니다. 열어보고 상태를 확인하고 서로 이어봐야 그제야 값이 매겨진다.
롯데타워에서 오스틴 딘을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그날 야구와 데이터를 같이 생각한 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팬으로 하는 말
여기까지 데이터 이야기를 했으니 마지막은 그냥 팬으로 쓰겠다.
나는 LG 트윈스 어린이 팬으로 시작했다. 올해 오스틴이 MVP를 받았으면 좋겠다. 44년 만에 나오는 첫 MVP가 이 선수라면 더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래 남아줬으면 한다.
물론 이만큼 해내면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부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도 응원할 생각이다. 잠실에서 함께한 시간만으로도 팬 입장에서는 이미 많이 받았다.